
무대 위에서 어떤 사람은 제후 역할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고문관 역할을, 또 어떤 사람은 하인이나 병 사 또는 장군 등의 역할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차이는 단지 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런 현상의 핵심 인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독같이 고통과 궁핍에 시달리는 가난한 희극 배우에 불과하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위와 부의 차이에 따라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행복과 즐거움의 내적 인 차이가 결코 그런 역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도 한풀 벗기고 나면 궁핍과 고통에 시 달리는 똑같은 가련한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
13-14쪽
인간을 이루는 것, 따라서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개성은 언제 어디서나 인 간을 따라다니며, 그가 체험하는 모든 것은 개성에 의해 채색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점에서 어 떤 경우에도 맨 먼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즐긴다. 육체적 향락에서도 그러하니 정신적 향유에 대해 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1쪽
우리의 행복은 명랑한 기분에 크게 좌우되고, 명랑한 기분은 건강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동일한 외 부 사정이나 사건이라 해도 우리의 몸이 건강하고 트는할 때와 병 때문에 짜증 나고 불안한 기분일 때 우리가 받는 인상을 비교하면 그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불행하게 하기도 하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못브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이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이다." 라는 에픽테토스의 글도 그런 의 미이다.
24-25쪽
정신의 둔감은 보통 느낌의 둔감함이며 예민함의 부족과 함께 나타난다. 이런 성질을 부여받은 사람 은 온갖 종류나 크기의 고통과 슬픔에 둔감한 편이다.
이러한 정신의 둔감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새겨지는 내면의 공허가 발생한다. 이러한 내면의 공허가 드러나는 이유는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늘 정 신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공허가 바로 무료함의 근원인 것이다. 이 공허는 무언가를 통해 정 신과 기분을 움직이려고 늘 외적인 자극을 갈망한다. (...) 온갖 종류의 사교와 오락, 여흥과 사치를 병적으로 추구하는 까닭은 주로 이러한 내면의 공허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낭비를 하고 비 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우리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은 내 면의 풍요, 즉 정신의 풍요이다. 정신이 풍요로워질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찰 공간이 줄어들기 때 문이다.
29쪽
재기 있는 인간은 무엇보다 고통이 없는 상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상태, 안정과 여유를 얻으려 애 쓸 것이다. 즉 조용하고 검소한 생활,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활을 추구할 것이고, 그에 따라 사람들과의 약간의 친교를 맺은 후에는 은둔 생활을 추구할 것이다.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심지어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외부로부터 필요한 것이 더 적어지고 다른 사람이 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는 비사교적인 인간 이 된 다. 정말이지, 사교의 질이 양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면 큰 세계에 나가 살아 볼 만하겠지만, 유 감스럽게도 백 명이나 되는 한 무더기의 바보는 한 명의 똑똑한 사람만 못하다. 반면 다른 극단에 있 는 사람은 궁핍함에서 벗어나 겨우 한숨 돌릴 만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심풀이와 사교를 추 구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일념에 어떤 것에도 쉽게 만족할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고독한 상태에서는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30-31쪽
가장 좋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많을수록, 따라서 향유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인간은 행복해진다. 34쪽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힘의 본래적인 사명은 사방에서 그를 죄어 오는 궁핍과 싸우는 것이다. 그 러나 이러한 싸움이 일단 잠잠해지면 할 일 없는 힘은 그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그 힘 을 가지고 놀 수밖에, 즉 그 힘을 아무런 목적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의 또 다 른 원천인 무료함에 곧장 빠져들기 때문이다.
37쪽
저급함의 본질은 대체로 의식에서 의욕이 인식을 압도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인식이 의지에 전적으 로 봉사하는 정도에 이른다. 따라서 굳이 봉사를 강요하지 않는 경우, 즉 크든 작든 아무런 동기도 존 재하지 않는 경우 인식 작용이 완전히 정지하며, 생각이 매우 빈약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40쪽
"정신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는 여가는 죽음이며 인간의 생매장당한 신세인 것이다.(세네갈 <서간집 >)"
42쪽
참된 부는 영혼의 내부에 있는 부일 뿐이고,
다른 것은 모두 이득보다 불행을 안겨 준다.
루키아노스 <명작선>
45쪽
정신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신경 기능이 무척 활발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고통 을 느끼는 감성이 극도로 예민하다. 나아가 그런 사람은 당연히 열정적인 기질을 갖추고 동시에 으 레 그렇듯이 온갖 상상력이 넘치고 완벽하며, 그로 인해 유쾌한 감정보다 곤혹스러운 감정이 훨씬 많긴 하지만 감정의 변화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격렬하다. (...) 그들은 일반인이 커다란 만족을 느끼는 수백 가지 일을 진부하게 여기고 참지 못한다. (...) 우리는 정신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사람이 실은 가 장 행복하다는 주장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왓는데 실제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사람의 행복을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47쪽
속물은 신체적 욕구밖에 없으므로 정신적 욕구가 아닌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사람을 찾는다. 그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정신적 능력을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히 려 정신적 능력을 대하면 그는 혐오감, 심지어 증오감마저 느낄 것이다. (....)
모든 속물의 커다란 고민은, 이상적인 것에서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는 항시 현실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는데 있다.
50쪽
소유물에 관한 각자의 만족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상대적인 양, 즉 그의 요구와 그의 소유물 간의 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소유물만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부모가 없는 분자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
51쪽
빈털터리만이 자신이 완전하고도 철저히 열등하고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런 점을 필요한 만큼 제대로 인식한다. 그런 자만이 번번이 뻔질나게 머리를 숙이고, 그런 자만이 허리 를 90도로 굽히는 것이다. 그런 자만이 무슨 일이든 따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런 자만이 자신의 공로 가 전혀 무가치함을 인식한다. 그런 자만이 자신의 상사나 그 밖의 유력인사가 쓴 졸작을 걸작이라 며 큰 소리로 또는 대서특필하며 공공연하게 찬양한다. 그런 자만이 구걸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 다. 따라서 그런 자만이 괴테가 다음의 글에서 우리에게 알려준 숨겨진 진리를 젊었을 때 재빨리 체
득할 수 있다.
비열함을 불평해 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누가 뭐라든 그런 자가 세상을 지배하니.
<서동시집> '나그네의 마음의 평정'
58쪽
칭찬을 갈구하는 사람은
하찮은 말에 기가 꺾이기도 살기도한다.
호라티우스<서간집>
나이가 든 사람은 그의 품행을 통해 명예를 주장할 수 있는지 인생행로에서 입증되어야 했다. 왜냐 하면 인간보다 더 오래 사는 동물들도 있으니 어디서나 연장자를 존경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나이 만으로는 연장자를 존경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하며, 세상사를 단순히 더 자세히 알고 있다 는 의미인 경험 역시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75쪽
엘베시우스는 자신의 주저 <정신의 대하여>에서 이러한 진리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 결론은 "우리 는 명예 때문이 아니라 단지 명예가 가져다주는 이점 때문에 명예를 사랑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보다 더 가치가 있을 수 없으므로 "명예는 목숨보다 중하다"는 멋들어진 격언은 앞서 말 했듯이 과장에 지나지 않는다.
76쪽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의 가치와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비참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웅이나 천재의 삶도 그것의 가치가 명성에, 즉 타인의 갈채에 의존한다면 역 시 비참한 삶이라 하겠다. 오히려 모든 존재는 그 자신 때문에 살아가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그 자체 로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이루는 것은 어떤 종류와 바식이든 독자적인 그 사람 잣니의 모습이다.
121쪽
행복론의 견지에서 보면 명성은 우리의 자존심과 허영을 위한 더 없이 진기하고 맛 좋은 음식과 다 름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자존심과 허영을 숨기고 있을 뿐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 다. 어쩌면 명성을 얻는 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 른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압도적 가치를 검증할 기회가 와서 그것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대 체로 그런 압도적인 가치를 제대로 확신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가슴 졸이며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은밀한 느낌을 갖는 것이다.
122쪽
최고의 기쁨이나 향락으로 인생의 행복을 재려고 하는 자는 잘못된 잣대를 잡은 것이다. 향락이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향락이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은 질투심이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 품는 망상이다. 반면에 고통은 적극적으로 느껴진다. 그 때문에 고통이 없다는 것은 삶의 행복 을 재는 잣대다. 무료함이 없어 고통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사실상 지상의 행복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모든 것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치르면서,즉 고통의 위험을 감수하 면서까지 향락을 맛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소극적인 것, 즉 환영과 같은 것을 맛보는 대가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향락을 희생한다면 이득을 얻는 것이다.
(...) 이 비탄의 무대를 유람지로 만들려고 하거나, 어떻게든 고통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 대신 향락과 즐거움을 목표로 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 다. 차라리 음울한 시선으로 이 세상을 일종의 지옥으로 간주하고 그곳에 불을 견디는 방을 하나 만 들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훨씬 덜 방황한다고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인생의 향락을 좇다가 결국 속은 것을 안다. (...) 재앙을 피아는 데 성공한 그는 속은 것이 아니다. 그가 피한 재앙은 극히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재앙을 지나치게 회피하고 향락을 불필요할 정도로 희생했다 해도, 모든 향락은 환영과 같은 것이므로 사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셈이다. 향락을 놓쳤다고 탄식하 는 것은 좀스럽고 가소로운 짓이다.
134쪽
괴테가 <친화력>에서 남의 행복을 위해 힘쓰는 미틀러의 입을 빌려 한 말도 이와 같은 의미
재앙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나 은 것을 원하는 자는 완전히 눈뜬장님이다.
136쪽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너무 행복해지려는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 다.
137쪽
세상의 소유물이 다 사라진다 해도
슬퍼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
세상의 소유물을 다 가졌다 해도
너무 기뻐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
고통과 환희도 지나가 버리는 것이니,
세상을 지나쳐 가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
안와리, <소헤이리>. 사디의 교훈시 <굴리스탄(장미정원)>의 표어를 보라>
139쪽
기쁨이 실제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초대받지 않고 알리지도 않은 채 자발적으로 으스대지도 않고, 조 용히 살금살금 다가온다. 기쁨은 종종 전혀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계기로, 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즉 결코 빛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은 기회에 나타난다. 기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금처럼 우연의 변 덕에 따라 아무런 규칙도 법칙도 없이 대체로 대단히 미세한 알갱이로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분이 며, 큰 덩어리로 있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39쪽
어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대충 알아보려면 그가 어떤 일에 즐거워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일에 슬 퍼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 자체로 볼 때 사소한 일에 슬퍼할수록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사람이라야 사소한 일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불 행한 상태에 빠지면 그런 사소한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삶에 많은 요구를 하면서 삶의 행복을 넓은 토대 위에 세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 토 대 위에 세운 행복은 자칫하면 무너지기 쉬우며, 재난이 일어날 기회가 훨씬 많아서 이러한 재난이 꼭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건물은 토대가 넓을수록 견고한 것과 달리, 우리의 행복이라는 건 물은 이런 점에서 반대다. 따라서 자신이 지닌 온갖 종류의 수단과 균형을 맞추어 요구 수준을 되도 록 낮추는 것이 큰 불행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행하든 삶에 대한 시시콜콜한 준비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빈번하고 어 리석은 일 중 하나다.(...) 어떤 일을 힘들여 달성하고 보니 그것이 우리에게 더 이상 맞지 않은 경우
가 왕왕 생긴다.
어차피 백년대계에 견디지 못하는데
왜 그대의 정신을 혹사시키는가?
141-142쪽
정신적인 면까지 포함해서 모든 범위를 한정해야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 알다시피 고뇌는 적극 적인 것이고, 행복은 소극적인 것이므로, 의지의 자극이 적을수록 고뇌도 적어진다. 활동 범위가 제 한되면 의지를 자극하는 외적인 유발 동기가 줄어들고, 정신을 제한하면 그런 내적인 유발 동기가 줄어든다. 다만 정신을 제한하면 무료함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단점이 있다. 무료함은 간접적으로 수많은 고뇌의 원천이 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락이나 사교, 사치, 도박, 음주 등을 시도해 보 지만 그래 봤자 온갖 종류의 손실과 파멸, 불행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한가하게 쉬는 것은 위험하다. 이에 반해 외적인 제한은 인간의 행복에 크게 도움이 되며 필수 불가 결하다. (...) 따라서 무료함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관계를 될 수 있는 한 극도로 단순화 하고, 심지어 생활 방식을 극히 단조롭게 해야 행복해진다. 그래야만 삶 자체와 삶에 필수적으로 따 라다니는 부담이 적게 느껴진다. 그런 생활은 냇무처럼 파도도 소용돌이도 일으키지 않고 유유히 흘 러간다.
150-151쪽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과만 완전히 융화할 수 있다. 친구와도 애인과도 완전히 융화할 수는 없다. 개 성이나 기분이 달라 사소한 것일지라도 언제나 불협화음을 초래한다. 그 때문에 마음의 진정하고 심 원한 평화이자 완전한 내면의 평정, 즉 건강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 지상의 재화는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철저한 은둔 상태에서만 지속적인 기분으로 가질 수 있다.
156쪽
극심한 추위가 닥치면 사람들이 서로 모여들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사교성이란 사람들이 서 로의 정신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정신적 온기를 충분히 지닌 사람 은 굳이 무리를 지어 모일 필요가 없다. (...)
다시 말해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이중의 이점을 얻는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한다는 이점이고, 둘째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점이다. 모든 교제에는 많은 강제와 고충, 위험이 따 른다는 것을 감안할 때 두 번째 이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다 는 데서 생긴다"<성격>라고 라브뤼예르가 말했다.
160쪽
"음식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사람과의 교제를 절제하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 베르나르댕 드생피에르의 말은 멋지고도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일찍 고독과 친해지고 점차 고 독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금광을 얻은 자와 마찬가지다. (...) 고독한 상태에서만 환경이 누구에게 나 자신의 눈에 비치는 배타적인 중요성, 즉 유일무이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잡한 세상 에서는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고통스럽게도 그런 중요성이 부정되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고독은 심지어 각자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고독은 우리를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 만들어 자신의 본성에 맞는 본래적 행복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161쪽
탁월한 개성, 남달리 독보적인 개성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본질적인 고립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압 박감을 느꼈지만 노년에는 홀가분한 기분을 갖는다..
168쪽
이미 어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 더 잇아 어찌할 수 없게 된 경우,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 데,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다간 참 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이 커져 자학하고 만다. (...)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흔히 그러듯이 우리 자신을 변명하고 미화하거나 축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보다는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확실히 따져 앞으로는 그 러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 좋다.
"징계를 받지 않고는 배움을 얻을 수 없다." (메난더 <단행시>>
174쪽
사람이나 사물에게 아무리 사소한 불쾌감을 느꼈다 해도 그것을 자꾸 생각해서 강렬한 색채를 띠게 하거나 과장되게 상상하면 무서워서 제정신을 잃을 정도의 괴물로 부풀어 오를 수 있는 것도 그 때 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쾌한 일은 될 수 있는한 가볍게 넘겨 버릴 수 있도록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 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178쪽
우리가 한 가지 문제를 처리할 때는 다른 모든 문제에 구애받지 말고 그 일에서 벗어나 모든 문제를 그때그때 처리하고 즐기며 감내해야 한다. 즉 다른 문제에는 전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 고 있는 사고의 서랍 중에서 한 개를 열 때는 다른 모든 것은 닫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겁게 짓 누르는 하나의 걱정거리 때문에 현재의 사소한 즐거움을 위축시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밀어내지도 않으며, 하나의 중요한 일을 걱정하느라 많은 사소한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180쪽
일을 하는 틈틈이
항시 글을 읽고 성현에게 물으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욕구에 시달리지 않고,
득 될 게 없는 두려움과 희망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호라티우스 <서간집>
182쪽
어쨌든 각자 자신의 능력 정도에 따라 무언가 행하도록 하라. 계획에 따라 활동하거나 어떤 일을 하 지 않으면 우리에게 얼마나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장기간 유람하는 도중 자신이 문득 꽤 불행하 다는 느낌이 드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실제로 일에 종사하지 않아서, 흡사 자신의 자연스 러운 본질적 특징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두더지의 욕구는 땅을 파는 것이듯이 인간의 욕구는 애써 노력하는 것이며, 저항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싸우는 것이다.
184쪽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는 일단 자연에 의해 정해지고 주어진 것이라면 어떤 개성도, 그 것이 아무리 형편없고 보잘것없거나 가소로운 것이라 해도 배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개성을 영원하고 형이상학적인 원칙의 결과로 현재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변의 것으로 간주 해야한다. 개성이 고약한 경우에는 "그런 괴상한 녀석도 있어야겠지요"(괴테<파우스트> 제 1부 348 3행에 나오는 파우스트의 말)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당한 일을 하는 것이며, 상 대방에게 도전해 생사를 건 싸움을 거는 셈이다. 왜냐하면 상대의 본래적인 개성, 즉 그의 도덕적 성 격, 그의 인식 능력, 기질이나 인상 등은 아무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191쪽
아무도 자신을 넘어서 볼 수 없다. 이 말은 누구나 타인을 볼 때 그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만큼만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구나 자신의 지성에 따라서만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195쪽
"누군가를 존경하는 동시에 매우 사랑하기는 어렵다"고 한 라슈푸코의 말은 적절한 지적이다. 그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으려고 할 것인가, 존경을 얻으려고 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196쪽
모든 것을 자신과 관련짓고, 어떤 사상도 곧바로 자신과 관련해 생각하는 가엾은 인간의 주관성을 명확히 입증해 주는 것은 거대한 천체의 운행을 보잘것없는 자아와 관련시키고, 하늘의 혜성도 지상 의 분쟁이나 하찮은 일과 연결시키는 점성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어느 시대에나, 심지어 아주 먼 옛날에도 이미 행해졌다.
198쪽
교제에서 우월함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그런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서만 생겨난다. 그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상대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느 끼게 해주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면 우정이 돈독해진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가끔씩 약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도 아무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들은 우리의 우 정을 더욱 중시한다. "존경 하지 않는 자는 존경받는다"는 적절한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하지만 어 떤 사람이 우리에게 실제로 매우 소중한 경우 마치 범죄라도 되는 드 슥런 사실을 그에게 숨겨야 한 다.
200쪽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일반족으로 인간의 진정하고 매우 슬픈 속성에 관해 무척 필요하고 분명 하며 철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인간의 행동거지를 실생활에 나타나는 행 동거지의 주석으로 이용하고, 이와 반대로 후자를 전자의 주석으로 이용하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 다. 이렇게 하면 자신은 물론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럴 경우에는 실생활이나 문학 작품에서 특별한 저열함이나 우둔함의 특성과 마주쳤을 때 그것을 불쾌함이나 분노의 소재가 아닌 단지 인식의 소재로 삼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 소재를 인류의 성격학에 대한 새로운 기여라 고 생각해 마음속에 새겨 두면 좋을 것이다.
205쪽
나폴레옹 황제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모두 불완전하다"라고 한 말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규칙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것에 적용되지만, 내게 떠오르는 단 한 가지 예외는 광물학자 가 알고 있는 천연 사금석이 인공 사금석보다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나는 어떤 허세도 부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허세는 언제나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허 세는 기만인데, 기만은 공포 때문에 생기므로 그 자체로서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허세는 자신 이 아닌 모습으로 꾸미려고 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낫게 돋보이려고 하니 자기 자 신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유죄 선고다.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듯이 허세를 부리고 그것으로 뻐기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자기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뭔가 부족한 면이 있음을 실토 하는 셈이다.
207쪽
우리가 타인을 신뢰할 때 태만, 사욕, 허영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스스 로 조사하고 감시하고 행하지 않고 남을 신뢰한다면 태만한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에 이끌려 남에게 무언가를 털어놓는다면 사욕이 작용한 것이다. 남에게 털어놓는 것이 우리 자 신을 자랑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허영심이 발동한 것이다.
216쪽
"격한 어조의 말을 하지 마라"라는 처세가의 오랜 원칙은 자신이 한 말의 해석을 타인의 분별력에 맡 기라는 뜻이다. 일반 사람들은 분별력이 부족하므로 그 자리를 떠난 뒤에야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반 면에 "격한 어조로 말하라"는 것은 감정에 호소하라는 뜻이므로 모든 것이 원래 의도와 반대의 결과
를 낳는다.
222쪽
언제나 시간의 작용과 사물의 덧없음을 염두에 두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반대를 즉각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행복에는 불행을, 우정에는 적의를, 좋은 날씨에는 나쁜 날씨를, 사랑에는 미움을, 신뢰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배신과 후회를 생생하게 그려 보고, 반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언제나 사려깊게 행동해서 그다지 쉽게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니, 그 것은 세상을 사는 참된 지혜의 영속적인 원천이 될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시간의 작 용을 예견할 것이다. 어쩌면 어떤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무상과 변천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 한 것만큼 경험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27쪽
위험한 일의 결말이 아직 의심스러운 한,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한, 겁먹지 말고 저항할 생각을 해야 한다. (...) 인생 자체가 겁먹고 떨며 움츠러들 만큼 가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인생의 재물은 말할 것도 없다.
235쪽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 는 두 개의 강력한 렌즈로 확대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란 그것의 지속에 의해 사물과 우리 자신의 극히 허망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허상을 주기 위한 위의 머릿속에 든 하나의 장치다.
우리가 지난날에 이런저런 행복이나 향락을 즐길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애석해하거나 한탄하는 것 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것을 가졌다고 한들 지금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기억 속의 말라빠진 미라만 남을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손에 넣은 것은 모두 이렇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의 형식 자 체란 바로 지상의 모든 향락의 허망함을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수단이다.
우리 인간이나 모든 동물의 생존은 확고한 상태에 있거나 적어도 시간적으로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유동적인 단순한 실재에 불과하다.
296쪽
세상사를 살펴보다가 특히 인류와 그들의 하루살이 같은 덧없는 존재가 급히 교체되는 것을 살펴보 다가, 희극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인간 생활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만들어 내는 인상은, 현 미경으로 봤을 때 섬모충이 우글거리는 물방울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치즈 벌레의 모습에 비 유할 수 있다. 그것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투쟁하는 모습은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토 록 좁은 공간에서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왕성하고도 진지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297쪽
대기의 압력이 없으면 우리의 신체가 파열해 버리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 고난, 곤궁, 고약한 일, 실 패가 없다면 자꾸 오만방자해져서 제어할 수 없는 바보 짓거리, 다시 말해 광포한 행위를 하기에 이 를 것이다. 심지어 배가 안전하게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 싣는 배의 바닥짐처럼, 누구나 항시 어느 정 도의 걱정이나 고통, 고난이 필요하다.
300쪽
인식 자체에는 언제나 고통이 없다. 고통은 의지만 겨냥하는데 의지가 억제당하고 방해받고 차단될 때 고통이 생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억제에 인식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햇빛이 공간을 밝 게 하는 것은 거기에 물체가 있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음은 공명을 필요로 하며, 소리는 진동 하는 공기의 파동이 딱딱한 물체와 부딪쳐야 멀리까지 들린다. 그래서 주위에 아무것도 없ᄂ슨 산꼭 대기에서는 소리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야외에서는 노랫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 로 고통으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는 온갖 고통과 무관한 인식에 의해 의지의 억제가 수반되 어야 한다.
306,307쪽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자신의 사고로 철저히 다듬은 지식이 아니라면 양은 훨씬 적어도 다양하게 숙고한 지식만큼 가치가 없다. 알고 있는 지식을 모든 방면으로 조합하고, 모든 진리를 다른 진리와 비교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지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알 고 있는 것만 면밀히 숙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면밀히 숙고한 것만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다.
393쪽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기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우리는 그것만 제대로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얻은 남의 생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남이 입다가 버린 옷에 불과하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생각의 관계는 마치 봄에 꽃이 피어나 는 식물과 돌멩이 속에 든 태곳적 식물의 화석의 관계와 같다.
독서는 독자적 사고의 단순한 대용품에 불과하다. 독서를 하면 자신의 생각이 남의 생각에 끌려다닌
다.
395쪽
독서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스스로의 생 각으로 엄밀하게 완결된 체계는 아니더라도 항상 연관성 있는 전체를 발전시키려고 할 때 끊임없는 독서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흘러 들어오는 것만큼 불리한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 의 생각은 모두가 남의 정신에서 싹튼 것이며, 다른 체계에 속하고 다른 색채를 띠고 있어서 사고와 지식, 통찰과 학신의 전체에 저절로 결코 합류하지 못하고, 오히려 머리에 가벼운 언어의 혼란을 일 으켜 그런 것들로 채워진 정신에게서 이제 온갖 명확한 통찰력을 뺑사아 버려 정신을 거의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가 이러한 상태에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상식이나 올바른 판단, 실제적인 배려 면에 서 배우지 못한 많은 사람들보다 뒤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험이나 대화, 얼마 안 되는 독서로 외부에서 얻은 보잘것없는 지식을 언제나 자신의 생각에 받아들여 동화시킨 것이다.
397-398쪽
호기심 많은 애호가를 위해 여기서 말한 부류의 사람에 드는 명백한 실례로 헤르바르트의 <도덕과 자연법의 분석적 고찰>과 마찬가지로 그의 <자유에 대한 서한>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그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알고 나면 놀랄지도 모른다. (...) 언제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생각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이 이제나 저제나 오기를 기다려
아한다. (...)
이론적 문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두노의 소유자 라 해도 항상 독자적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에서 말했듯이, 독자적 사고의 대용품이며 정신에 재료를 제공해주는 독서에 남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유익하다. 독서를 하면 언제나 우리의 방식이 아닌 방식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생각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너무 많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신이 대용품에 길들여져서 생각하는 것 자체 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독서할 때보다 현실 세계를 바라볼 때 독자적 사고를 할 계기와 기분이 훨씬 자주 일어나므로 책을 읽느라 현실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99-401쪽
제 1급의 정신을 지닌 소유자들의 특징적 자질은 모두 직접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들이 제시하 는 의견은 모두 그들 자신이 스스로 사고해 얻은 결과이며, 어디서나 말솜씨를 보더라도 그런 사실 이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군주와 같다. 그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결정하며,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판단은 군 주의 결정처럼 자신의 절대적 권력에서 유래하며, 자기 자신에게 출발한다.
402쪽
권위 있는 자의 말을 인용해서 미해결의 문제를 판정하기를 매우 좋아하고 그러는 데 급급한 사람들 은 자신에게 부족한 자기의 분별력이나 통찰력 대신 남의 것을 동원할 수 있을 때 참으로 기뻐한다. 403쪽
일반적으로 사상가는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사고하는 사람과, 남을 위해 사고하는 자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자의 사람들이 참된 사상가이며,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에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철학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들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은 바로 사고에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그럴듯하게 드러내 보 이기를 원하고, 세상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들은 이런 점 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404쪽
1820 칸트에게
나는 그대가 있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지만 그대는 푸른 하늘 저쪽으로 사라져 갔네.
나 홀로 여기 평범한 인간들 틈에 남아 있지만, 그대의 말, 그대의 책만이 오직 나의 위안이네. 그대 말에 담긴 정신으로 가득 찬 울림으로 황량한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지.
내 주위엔 온통 낯선 사람들뿐
세상은 황량하고 삶은 길다.
471쪽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이 삶에의 맹목적인 비합리적 의지라고 파악한다. 그러면 그런 사실은 어 떻게 파악되는가?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세계가 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본다. 시간과 공간은 칸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천적 직관 형식이고, 인과율은 오성 범주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 인과율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험적 세계는 한낱 표상의 세계일 따름이지, 물자 체의 세계가 아니다. 이 점은 칸트와 견해를 같이하지만 범주를 인과율 하나뿐이라고 보는 점이 그 와 다르다. 그러면 물자체를 파악할 길은 전혀 없는가? 칸트는 경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쇼 펜하우어는 우리의 신체를 통해 물자체를 파악하는 길을 열었다.
483쪽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는 인식 주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인식 대상, 즉 물자체이다. 그러 므로 외부로부터는 이를 수 없는 대상 본연의 내적 본질에 이르는 길이 안으로부터 우리에게 열려 있다.(...) 우리 안의 이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의지라고 부른다. 이 의지는 신체와 밀접하게 결부되 어 있는 삶에의 맹목적 의지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 운동과 동시에 움직이는 무의식적인 의지다. 그 것은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484쪽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궁극적으로 의지에서 벗어나는 상태인 해탈을 주장하는데, 그는 금욕과 무지 에 의해 비로소 진정한 해탈이 가능하다고 본다. 삶에의 의지의 부정이란 흔히 알고 있듯 자살이 아 니라 해탈, 즉 범아일여인 것이다. 말하자면 삶에의 의지의 부정이란 어떤 실체를 없애 버리겠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의욕하지 않는 행위,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의욕해 온 것을 더 이상 의욕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진정한 해탈을 구하는 자는 공허한 무로 몰입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자의 눈에는 세계란 본래 무의미하고도 무가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인도와 불교의 요소로 채색된 염세적 허무주의에 도달한다.
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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