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각들

올해부터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타면서 밀리의 서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중 인기 소설 목록에서 『빛의 조각들』을 발견했다. 도입부에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설정이 흥미로워서 하루만에 끝까지 완독했다.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 <비욘드 투 소울즈>, <은하철도 999>, <사쿠라 2호>처럼,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기술 발전으로 생기는 괴리를 다룬 작품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누구든 행성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먼 미래, 인간은 신체의 원하는 부위를 기계부품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이렇게 특정 부위를 고성능 기계 부품으로 교체한 인간들을 ‘인핸서’라고 한다. 반면 타고난 신체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오가닉’도 있다. 화자 ‘뤽셀레’ 처럼 돈이 없어서 ‘인핸서’ 가 되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풍족해도 인핸서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이다. 순수한 신체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예술로 평가받기에 화가, 음악가 등 예술가만큼은 반드시 오가닉이어야 한다는 설정이다.
‘ 소카 ’ 는 1등급의 대기에서도 선천성 폐질환으로 인해 산소 헬멧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천재 화가이다. 인핸서가 되면 작품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완전한 자신의 신체를 자조하며 살아간다. 그런 소카의 대저택에 불의의 사고로 흑백증을 앓게 된 ‘뤽셀레’가 자신의 인핸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청소부로 들어오게 된다.
각자의 이유로 불완전한 신체를 안고 살아가는 스스로의 처지를 경멸하며, 삶의 의지조차 미약해진 소카와 뤽셀레
이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게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기 쉽다. 인간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완벽함과 편리함에 가까워지지만, 정작 내면의 감정은 그와 반대로 흐른다. 채워질 수 없는 공허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것에 갈증을 느끼는 게 아닐까?
기술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족해진 시대에 사람들은 더 나은 신체를 꿈꾼다. 완벽한 외모와 영생, 그리고 더 기능적인 몸을 바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결국 그 끝에서 ‘영원함’을 향한 염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수메르인들도 문명이 번성할 때 장수와 불사의 비밀을 찾기 위해 의식과 의약, 신비로운 의례에 집착했으며,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기술과 의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더 오래, 더 완벽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유한성과 불완전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영원과 완벽함을 향한 끝없는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무튼 다루는 내용에 비해 <빛의 조각들>은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그리고 색채 묘사나 이미지 묘사가 너무 좋다. 다루는 주제가 디스토피아적 SF는 맞지만 소소한 일상의 희망을 담은 작품잉다.
이제 인류는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다움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매일 여기저기에서신기술이 탑재된 노트북, 핸드폰을 구매하라는 광고가 쏟아진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낙오된 사람들에게는 고립을 야기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AI의 놀라운 발전이 각광받는 동안,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을 사회는 책임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핵 개발을 멈추어야 한다고 경고했던 것처럼, 우리도 기술 발전에 따른 도덕적 문제를 미리 대비하고, 지금이라도 인간 중심의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가속화되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 상실과 비극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스스로 놓고 있는 셈이다.
은하철도999

반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비극적인 작품으로 은하철도999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다. 기계화로 영원한 삶을 얻은대신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세계관을 잘 보여주었다.
과학과 기술이 극한까지 발전한 시대, 부유한 사람들은 기계 몸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위험과 고난에 노출되는 잔혹한 미래가 펼쳐진다. 인간의 몸을 모두 기계로 바꾸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과학자 집단과, 이에 반대하며 생명 그 자체의 가치를 지키려는 집단이 충돌한다. 이 세계에서 주인공 철이는 기계 몸을 얻기 위해, 신비로운 여인 메텔과 함께 안드로메다의 별로 여행을 떠난다.
작품 제목에서 ‘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미완성을 의미한다(‘1000’은 완전함).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영원한 소년’ 철이는 여행 중에 기계 인간들의 허무함을 목격하며, 유한한 삶이 있기에 청춘이 빛나고 인간의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철이는 기계 몸을 포기하고 인간으로 남기로 결심하며, 메텔과의 이별을 통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메텔은 이러한 철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사랑의 힘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기계 제국을 파괴하도록 돕는다. 메텔이 입은 검은 옷은 기계 문명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상복이라는 설정도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은하철도999 1화에서 매우 충격적이고 슬픈 장면이 등장한다. 인간 사냥꾼들은 철이 엄마를 사살하고, 그녀를 박제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라는 명령을 수행한다. 사냥꾼들은 철이 엄마의 하반신을 제거한 뒤 나머지 부분을 장식품처럼 박제하여 벽에 걸어두고, 다음 타겟으로 철이를 사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텔의 도움으로 사냥꾼들의 소굴을 급습한 철이는 그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사냥꾼들을 모두 처치하고, 엄마의 시신과 함께 불태운 뒤 메텔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TV판 <은하철도 999>의 충격적인 시작이다.
이를 보면, 한국에서 어린이용으로 방영되었지만, <은하철도 999>는 결코 어린이만을 위한 만화가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소재가 상당히 깊고 어두우며, 플란다스의 개나 안데르센 동화처럼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슬픈 이야기임을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미래 사회나 기계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보면, 인간과 기술, 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의 긴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핸서와 오가닉, 기계 인간과 유한한 인간의 대비는 기술로 얻은 ‘완벽함’이 결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도 결핍과 고독이 존재하며, 인간의 감정은 편리함이나 영생과 같은 기술적 완전함으로 충분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정말 어렸을 때 봤던 <사쿠라 2호>라는 일본드라마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은 죽은 연인을 그리워해 그녀를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들지만, 그것은 결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 외형은 같지만, 함께하는 체험과 감정은 공유되지 않으며, 기술로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의 깊은 그리움과 염원을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다.
기술과 발전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인간답게 사는것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 우리는 기술이 가져오는 혜택과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지키고 존중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완전함과 불완전함, 기술과 인간성 사이의 괴리는 미래 사회를 설계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중요한 화두임을 잊지말아야한다.
'영화&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음의 소란을 다스리는 철학의 문장들> 리뷰, 책 속의 한 줄 모음 (1) | 2026.03.16 |
|---|---|
| 영화 〈아마데우스〉 줄거리, 리뷰 – 신이 선택한 천재와 그를 질투한 한 인간의 이야기 (1) | 2026.03.16 |
| 오즈 야스지로 영화 안녕하세요(お早よう) 리뷰, 줄거리, 감상평 (0) | 2026.03.12 |
| 장항준 감독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감상평 - 지켜주지 못한 정의, 실현되지 못한 정의에 대해 가져야할 마음 (0) | 2026.03.04 |
| 영화 <가버나움> 리뷰 - 그 아이들 지금 잘 지내고 있답니다 (9) | 2025.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