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세상은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범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조화로운 공존과 협력으로 세상은 전진해왔다. 천재는 타고난 영재가 노력한 것이다. 영재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 중 대다수인 평범한 사람들, 재능은 둔재만큼 없지만 노력하는 열망만큼은 천재과 비견되는, 천재의 노력을 지니면서 둔재의 재능을 지닌 비운의 족속을 범재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가 다수인 범재에 속한다고 해서 절망하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타고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살아가며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타고나게 잘하는 것으로 성공하거나, 재능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드물다. 누구든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죽도록 노력해 본 경험 한 번쯤 지니고 있을 것이다. 노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천재는 범재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재의 재능의 차이를 바로 옆에서 느끼며, 바라보는 범재의 마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경과 감탄, 열등감, 질투 같은 것들이 불편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처럼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시기하고 선망하는 궁중음악가 '살리에리'의 신을 향한 분노와 바닥 모를 절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이다.

들어가며2
음악이나 예체능, 예술, 체육 같은 분야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기 어려운 타고난 재능이 존재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낀 순간이 중학교 때 피아노 수행평가였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물론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래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어려운 곡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곡은 베토벤의 ‘템페스트(폭풍) 3악장’이었다. 빠르고 난이도가 높은 곡이었다. 나는 그 곡을 위해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연습했다. 악보를 반복해서 보고, 손가락이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번 쳤다. 그렇게 연습한 끝에 겨우 곡을 끝까지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곡을 거의 처음 보는 것처럼 악보를 펼쳐 보더니, 이틀쯤 지나서 음악실에서 갑자기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그 애는 그 곡을 끝까지 자연스럽게 연주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고백컨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붙잡고 연습해서 겨우 도달한 곳을, 그 친구는 하루나 이틀 만에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해내버린 것이다. 그때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예술이나 예체능 분야에서는 특히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노력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사람마다 다른 출발선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가 되는 순간이 있다.
예전에 누가 육상부를 했었다고 한다. 그분이 육상부에서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분 말로는 함께 뛰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몸부터가 달랐다고 했다. 달리는 모습을 보면 공기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뛰었고, 기록도 훨씬 좋았다고 한다. 옆에서 보면 분명 같은 트랙 위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은 이미 다른 세계에서 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을 때 우리는 흔히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들여 그 뒤를 간신히 따라간다. 늘 바로 뒤에서 2인자로 남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범재’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영화 소개
신의 사랑을 받은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 재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평범한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의 질투를 그린 이야기다. 1984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지금 봐도 완성도가 매우 높다. 제5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 / 감독 / 남우주연 (F. 머레이 에이브러햄) / 각색 / 미술 / 의상 / 분장 / 음향 8개 부문 수상작이다. 지금까지도 음악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뒤 정신병원에 수용된 살리에리가 자신을 찾아온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시작된다.
“왜, 제가 아닌 그여야 했습니까?”
살리에리는 황제 요제프 2세의 비엔나 왕실의 궁중 음악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음악을 반대하던 아버지와 비관적인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 이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살리에리는 신께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신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절제된 삶을 살았다. 그렇게 노력 끝에 부와 명예를 얻고, 황제에게 음악을 가르칠 만큼 비엔나에서 손꼽히는 지위를 얻은 것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첫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천재라는 소문이 자자한 모차르트가 비엔나로 오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고, 일곱 살에 교향곡을 만들고 열두 살에 오페라를 작곡할 만큼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원래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해 비엔나로 올라온 것이다. 그의 명성은 이미 유럽 곳곳에 퍼져 있었고, 그 소문은 비엔나 궁정에도 전해졌다. 결국 황제 요제프 2세의 궁정에서 모차르트를 불러 직접 연주를 들어 보려는 자리가 마련된다.
살리에리는 처음에 모차르트를 대단한 음악가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모차르트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그는 장난스럽고 철없어 보였고, 때로는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궁정의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살리에리에게는 더욱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궁정에서의 첫 만남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처음으로 온전히 체감하는 순간이 된다. 모차르트는 다른 작곡가가 만든 악보를 잠깐 훑어본 뒤 그것을 즉석에서 변주하며 연주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악보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살리에리는 자신이 평생 노력해 온 음악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경심과 경외심마저 느끼게 된다.
방탕하고 오만한 모차르트


하지만 , 모차르트의 사생활은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그려진다. 파티에서는 여색을 밝히고, 여성의 젖꼭지를 닮은 파이를 먹으며 경박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는 인물이다. 천재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천박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살리에리는 그를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모차르트의 오만함, 그리고 비엔나에서의 데뷔


모차르트의 오만한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은 오페라의 언어를 정하는 장면이었다. 당시 궁정의 기존 관습은 이탈리아어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황제가 “우리가 어떤 언어로 하기로 했소?”라고 묻자 로젠베르크 백작은 이탈리아어로 정했다고 답한다. 그러자 모차르트는 “그랬던가요?”라고 반문하며 사실상 그 결정에 태클을 건다.
모차르트는 작품 제출을 거부하려 하고, 이에 백작은 “간단하네. 자네가 이 자리를 원하면 작품을 제출해야 해. 자네가 비엔나의 유일한 작곡가는 아닐세”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자 모차르트도 물러서지 않고 “하지만 내가 최고인걸요!”라고 맞받아친다. 궁정의 권위와 천재 예술가의 자존심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이다.
결국 영화에서 황제 요제프 2세가 “독일어 오페라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소?”라고 말하며 모차르트의 편을 들어 준다. 그렇게 해서 모차르트는 독일어 오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게 모차르트는 비엔나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며 점점 명성을 쌓아 간다. 살리에리가 흠모하던 소프라노마저 모차르트를 극찬하자, 그는 모욕감과 열등감에 모차르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한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

이제 살리에리의 삶에 신을 향한 감사와 기도는 사라진다. 평생을 지탱해 주던 믿음도 점점 무너져 간다. 대신 그의 기도는 점점 저주의 기도로 바뀌었다. 자신에게 위대한 재능을 주지 않고, 오히려 모차르트 같은 사람에게 그것을 내린 신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살리에리는 신이 만든 피조물에 해를 끼치겠다는 일념으로, 그를 파멸로 이끌기 위한 거대한 음모를 준비하게 된다.
살리에리는 평생 신을 섬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자신의 재능과 삶을 모두 신에게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절제된 삶을 살아왔고, 그 보답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왔다. 그런데 자신이 믿어 온 신이 그런 방탕한 사람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내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은 살리에리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비극이란, 신께서 자신에게 딱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볼 수 있는 재능까지만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재능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깊은 질투와 분노를 느끼게 된다.
결국 살리에리는 자신이 믿어 온 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왜 저런 사람에게 그런 재능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와 광기에 점점 사로잡히며, 동시에 신을 향한 원망을 더욱 깊게 키워 간다.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모차르트를 몰락시키기 위한 살리에리의 계락

한편 모차르트는 술과 향락에 빠져 점점 신경쇠약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방탕한 생활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진다. 살리에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일감을 주는 척하면서 그의 집에 하녀를 고용해 몰래 상황을 감시하게 한다. 그러다 모차르트가 집을 비운 사이, 그가 작업하던 악보를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훗날 걸작으로 평가받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살리에리는 그 악보를 보며 깊은 충격을 받는다. 악보에는 수정한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은 한 곡을 쓰기 위해 수없이 고치고 지우며 며칠씩 고민하는데, 모차르트의 음악은 마치 머릿속에서 완성된 채 흘러나온 것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살리에리는 음악적 경외감과 동시에 깊은 패배감과 질투를 느낀다. 그렇게 미워하던 모차르트의 음악이 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반면 모차르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점점 쇠약해지는 몸과 밀린 일감뿐이었다. 그는 지친 몸으로 밤새 작곡을 이어 가며 자신을 혹사한다. 그러던 중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된다. 어느 날 밤, 살리에리는 검은 가면을 쓴 채 모차르트를 찾아와 진혼곡(Requiem) 작곡을 의뢰한다. 모차르트는 그 의뢰를 받아들이고 곡을 쓰기 시작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곡은 결국 자기 자신의 죽음을 위한 음악이 되고 만다. 병든 몸으로 작곡을 이어 가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악상이 쏟아져 나오고, 살리에리는 그의 곁에서 그 음악을 받아 적는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모차르트는 진혼곡을 작곡하던 중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고, 이후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남은 부분을 이어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레퀴엠(진혼곡), 모차르트의 죽음


이렇게 모차르트에게 집착하던 살리에리는 결국 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신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생 신을 섬기며 살았다고 믿었지만,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결국 스스로 그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정신은 점점 무너져 간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미워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재능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도 바로 살리에리였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향한 감정은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동경과 감탄, 그리고 질투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결국 살리에리가 내렸던 저주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
"당신들의 자비로운 신은 모차르트를 죽이고 날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었소"
(고해신부에게) 나의 소망은 음악으로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소. 그런데 하느님께선 내게 찬송의 열망을 심으시면서... 날 벙어리로 창조해버렸어. 어째서요? 말해 보시오! 하느님께서 내가 음악으로 당신께 찬송드리길 원치 않으셨다면, 왜 내 몸을 좀먹는 그런 열망을 심으신거요?... 그러면서 도대체 왜 재능은 안주신거요?
난 세상의 모든 범재들을 대표한다오. 내가 그들의 대언자이지. 난 그들의 수호성인이야. 세상의 범재들아!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죄를 사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의 죄를 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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